28년을 눈뜨고 살아온 주제에 좋아하는 것조차도 없어.

나는 앞으로 뭐 해먹고 사나?


좋아하는 것이 있느냐, 하는 관문에서부터 탁 막혔다. 아직까지 좋아하는 것조차 못 찾았다고 생각하므로.
A 씨와의 대화에서 나 좋아하는 것도 없어, 난 한참 어린 것도 아닌데 1관문도 넘지 못한 머저리야! 라고 말하니 '너 그럼 진짜 실망이야, 승무원 하는 것 재밌다고 간거잖아. 전 회사일 보다 좋고 재밌어서 간거 아냐? 일단 당장 1년 후가 어찌되든 생각하지 말고 지금 자체로만 따지면 재밌는 거 아니였어?' 한다.

재밌어, 당장은 재밌어. 신기한 일이니까. 근데 진심으로 좋아하고 재밌는 일인지는 모르겠어.
하며 시작한 설문조사. ...랄 것까진 없고 A 씨가 말한 내 모습.


'장시간 승부해야하는 일보다 단기간 성과를 볼 수 있는 연속적으로 해야하고,
스트레스가 극히 제한되고 뚜렷한 limit 이 있고, 그 한도를 벗어나는 순간 본인을 괴롭히는 것은 물론 주위에 있는 사람들까지 슬슬 괴롭히기 시작하며,
정적인 두뇌회전보다는 몸이 먼저 반응하는 일이여야 하고, 추진력은 참 굉장해. 저 자식 좀 더 신중해야 하는 것 아냐? 생각이 들 정도로.
남에게 명령하는 자리보다는 본인이 직접 할 수 있는 현장업을 선호하며,
일을 시작하기 이전 계획을 세우는 것이나 배분하고 정리하는 것은 잘 하지만 착수 후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지거나 일에 태클이 들어왔을 경우 당황하여 일을 그르치는 상태가 될 수 있다'

....
나 저런 인간이구나. 물론 A 에게만 물어본 것이지만 다른 사람들이 나한테 받는 느낌은 다 비슷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다른 사람한테도 물어보고 싶지만 정확하고 구체적이며 솔직하게 대답해 주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싶기도 하고. 긴 시간 봐온 사람이니까 단점도 훨씬 잘 알겠지. 사회에서 만난 사람이 아니니 가려 말할 필요도 없고.

본인도 말이 약간 심했다고 느꼈는지 '바꿔 말하자면 주어진 상황에서는 맥시멈으로 네 능력을 보인다는 이야기잖아. 살면서 그 능력의 한계와 스트레스의 Limit 을 늘려나가는 훈련을 하면 되지 않을까?' 한다. A씨, 좋은 말로 에둘러봤자 나 이미 속상했어ㅋㅋ

'그냥 서비스직이 어울리지 않아? 너한테는 참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는데. 그런 것도 있는 것 같아. 너한테는 뭔가 일을 부탁하고 되돌려 받았을 때 받는 사람 입장에서 굳이 검토하지 않아도 어련히 똑부러지게 했겠지, 하고 믿게 만드는 재주도 있어. 실제야 어떻든 똘똘하고 똑부러지는 건 참 굉장해. 같이 있으면 기분도 참 잘 맞춰주고, 좋아. 근데 누군가와 Inter-action 이 지속되서 상대방에게 책임감을 느끼기 시작하면 정색하는 게 참 순간이야. 책임감을 느끼기 시작해서 부담을 느끼고 있다는 것을 상대방도 확 알도록 리액션이 보인다고나 할까? 한마디로 Very-Welcoming 과 Very-disgusting 이 극과 극인게 너의 최고의 단점이기도 하지' 

'처음 만났을 때도 그렇고, 거듭되는 경우에도 말을 참 잘해. 네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참 잘해. 무슨 일에 관여해서 네 얘기를 참 잘해. 네 입장에서 봤을 때 이 일은 어떻고 가타부타 너에게 옳고 그르고. 이상하게 네가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을 느끼자면 네가 말하는 컨텐츠 보다도 말 자체와 말 분위기에 푹 빠진다고나 할까. 솔까말 물건 팔면 그냥 으응, 이러고 살 것 같은 기분이랄까. 그런 것 있잖아, 굳이 사고 싶지 않은데 점원이랑 친해져서 사고 있는 기분. 임기응변도 진짜 빠르고. 너의 화술은, 네 성격의 단점과 지식의 결여까지 커버하고 무마할 수 있을 정도로 뛰어난 것 같아. 어려운 말 주루룩 하는 대학교수처럼 지적인 타입은 아니고, 중학교 선생님같은 기분있잖아. 친밀하고 잘 설명하고. 그것에 더불어 잘 듣기도 해. 먼가 얘기하면 리액션이 좋아서 와, 내 얘기 진짜 재밌구나, 라고 착각할 때가 있거든. 너한테 반응이 좋아서 다른 사람한테 얘기하면 또 별로다. 근데 네가 스스로 깨닫지 않아? 말을 뱉어놓고 나 왜 이렇게 달렸어, 나 왜 그랬어 자책할 때 있잖아. 그리고 뒷끝이 정말 없고, 호불호가 참 분명해.'


A 씨랑 얘기하며 바로바로 받아적은 나의 이야기.

진짜 이게 나야? 하고 갸웃하는 점도 있고, 으응, 이렇게 수긍하는 것도 있지만 어쨌든 내가 생각하는 나와 너무 달라, 정말이란 말야? 내가 믿고 있던 나는 대체 어디로 간거야! 라고 생각하게 만든 간만에 진지한 인생 피드백.

하고 싶은 일이 무언지 조심스럽게 말하는 나에게 '흠, 하고 싶은 건 있긴 했구나. 결국은 돈이네. 끄으으응' 해주는 A 씨.
'역시 너의 문제는 책임감과 스트레스였어. 그렇게까지 책임감 느끼고, 또 거기에다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으면 어떻게 해?'

생긴게 이러니 어쩌겠어, 나 어찌 살어?

'그냥 해봐. 어차피 네 인생 혼자 사는 거고, 네 인생 네가 책임져야 하는 건데, 별 수 있겠어. 자꾸 서른이 코앞, 시간이 없어, 라며 조바심 내지 마. 안 그래도 너는 늙고, 변하는 건 없고, 서른이 넘어도 우린 그 한탄 하고 있을꺼니까.'

잔인한 A 씨, 너무 솔직한 거 아니삼? 근데, 우리 너무 오래 봐왔으니까 사회에서 만난 사람들은 나에 대해 다르게 생각하지 않을까?

'수위의 차이이지 별반 다를 거 없다고 생각해. 더 최악으로 생각할 수도 있으니까 안 묻는게 좋지 않을까? 네 말대로라면 너 인간관계 그냥 그렇잖아. 더군다나 사회에서 만난 사람에게 그런 거 물어보고 답변 바랄 수 있겠어? 그 사람들이 뭐때문에 널 기억해? 너 아마 한국에서 있었던 사회생활에서는 잊혀졌을 껄. 너 떠난지가 언젠데.'

잔인한 것, 너 진짜 처음에는 멍 때려서 타자 못 칠 정도로 나 당황하게 했어.


고마워 A 씨, 관문 하나하나 넘어서 마지막 가치창출을 할 수 있는 관문을 지나고 나면 그 부가가치 너에게 나누어 줄께.
너 인생명세서에 불로소득 기재될 때까지 나 잘 사나 지켜봐바.
말 뿐이 아니라, 행동하고 실천하는 서른 살 되도록 할테니까.

...곧 있을 여행은 안 가는게 좋을까? 그 돈 모으면 한달 생활비는 나올텐데;
역시, 나는 계획만 세우고 아직 실천을 못한대니까.

여행을 계기로 돈도 모으고 살도 빼고 할테니까, 정말 실천할 테니까 한달만 준비기간 줘.
어차피 네가 이 글 못 본다는 건 알지만, A 씨, 나 잘 살아볼께. 2시간 동안 안 좋은 전화상태 때문에 소리를 지르면서 전화하고 내 가슴 후벼파주고 시큰하게 해준 거 고마워.

1관문 넘을 수 있게, 일단 노력할께.
by flying mia | 2008/08/25 00:34 | 바닥에 파묻혀ㅠ | 트랙백 | 덧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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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고스 at 2008/08/26 21:29
솔직하게 얘기를 해주는 사람, 그 얘기를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사람.. 좋은 콤비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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